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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외할머니의 인생 3부. 인생 끝자락에 맞이한 예수님 꽃이 활짝 핀 수목원을 걷다 보면, 두 팔로 핸드폰을 쭉 뻗어 화면 가득 꽃을 담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요리조리 열심히 핸드폰 각도를 돌려가며 아름다운 꽃의 모습을 담으려 노력하는 그 사람들은 대부분 나이가 지긋하게 든 어르신인 경우가 많다. 몸은 늙어도, 마음은 늙지 않는지. 열정적으로 꽃 사진을 찍고 있는 저 어르신의 마음이 꽃처럼 싱싱한 것만 같아, 무표정으로 걷던 내 얼굴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다. 우리 외할머니도 꽃을 참 좋아하신다. 축하할 일이 있을 때, 고운 빛의 생화를 드리면 참 기뻐하시곤 한다. 나는 외할머니의 그런 모습이 좋다. 외할머니가 외삼촌이랑 외숙모를 괴롭힐 때는 정말 밉고 나에게 그녀의 피가 흐른다는 것에 절망을 느낄 때가 있는데, 달아나는 정(情)을 잡아..
[이야기] 외할머니의 인생 2부. 때로는 가족보다 남이 낫다 인생은 외롭다. 외로운 인생에서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는 것은 축복받은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만약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내 가족이라면 더할 나위 없는 행운이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내 가족에게 내가 그런 사람이 되기를 소망하며 살아간다. 외가댁 식구들을 보면, 한 사람 한 사람은 괜찮은 사람이고 친구도 많다. 밖에서는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듣는데 집 안으로 들어가면 그 좋은 사람들은 온데간데없다. 서로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 그래서 내 눈에는 나이 들고 사회활동을 할 수 없는 외할머니가 외나무다리를 홀로 휘청거리며 건너는 사람처럼 위태로워 보인다. 외할머니의 자식 셋 중에 자기 엄마와 깊은 대화를 나누어 본 사람이 있을까? 내가 중학생 때 외할머니가 집에 오..
[소설] 판타지아 그녀는 침대 밖으로 나른하게 늘어져 있던 오른팔을 들어 올려 머리맡에 있는 핸드폰을 찾았다. 애인의 몸에 깔려있던 반대쪽 팔을 힘주어 빼낸 뒤 바로 누웠던 몸을 뒤집어 침대에 엎드렸다. 그새 잠이 든 남자는 그녀의 팔이 몸에서 떨어지자 벽 쪽으로 그녀를 등지고 돌아누웠다.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그녀는 살짝 한기가 느껴지는 것 같아 다리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간 이불을 끌어 몸을 감쌌다. 이불은 솜이 가볍게 누벼져 있어 따뜻하면서도 겉감은 감촉이 부드러운 60수 면 원단이라 맨살에 닿았을 때 포근하고 기분이 좋았다. 색은 파스텔 톤에, 잔잔한 꽃무늬로 되어있어 귀엽다. 이불을 감싸 안으면 어린 강아지를 안고 있는 듯해서 그녀는 이 이불을 좋아했다. 이불 밖으로 하얗고 날씬한 두 발을 내어놓고, 무릎을 굽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