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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세상이 나를 억까한다 아직 마흔도 되기 전이지만, 내가 배우고 살았던 가치와 이 시대가 요구하는 가치가 매우 다름을 느낀다. 간혹 마주하는 당혹스러움에, 세상이 나를 밀어내다 못해 억까*한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어르신이 스마트폰 사용이나 키오스크 주문에 어려움을 느끼는 바와 같이 나 또한 빠르게 변하는 디지털 세상에 당황하는 일이 많다. 디지털 쿠폰을 쓰러 어느 상점에 갔을 때 일이다. 쿠폰 금액에 최대한 맞춰서 알뜰하게 상품을 담았다. 계산대에서 당당하게 바코드를 내밀며 계산해달라고 했다. 보송보송한 얼굴의 직원은 나를 안타깝게 보더니, 앱을 설치해서 쿠폰 등록을 해야 결제가 가능하다고 한다. 나는 민망함을 감추고 다시 맨 뒤로 줄을 서서 급히 앱을 깔았다.       ‘이쯤이야 쉽지, 뭐.’       그러나..
[이야기] 서랍을 열다 잠겨있는 서랍만큼 간절하게 열고 싶은 게 또 있을까. 책상 서랍 안에는 별거 없는 문방 용품이 있을 뿐이다. 언제나 꺼낼 수 있을 땐 찾지도 않던 필기구와 스티커가, 꺼낼 수 없을 땐 왜 그리도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나와 신랑이 나란히 책상에 앉아 있으면, 우리 아이는 심심하다고 옆에 꼭 붙어서 논다. 키보드도 두드려보고, 무선 이어폰도 만져보고, 그래도 할 게 없으면 내 책상 서랍 자물쇠를 가지고 논다.        원목 서랍은 네 칸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맨 위 칸만 자물쇠가 달려있다. 아이는 자물쇠에 열쇠를 넣고 여러 번 돌린다. 달칵하며 잠기는 소리가 나면, 잘 잠겼나 당겨본다. 덜컥덜컥 걸리는 소리가 나며 서랍은 꼼짝하지 않는다. 그리고 다시 열쇠를 돌려서 달칵 소리가 나면, 얼른 ..
[이야기] 그칠 줄 모르는 불안 나는 쉽게 불안해진다. 불안한 감정이 나뿐만 아니라 가족에게도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걸 잘 알면서도, 나의 불안은 그칠 줄 모른다.        신랑이 테무에서 물건을 주문했다. 그중 하나는 차량용 가습기였다. 국산 제품을 두 개나 썼었는데 둘 다 쉽게 망가져 버렸다. 어차피 잘 망가지는 거, 저렴한 게 낫다며 주문했다. 그런데 나는 집에 도착한 가습기를 바라보기만 할 뿐, 선뜻 켜지 못했다. 신랑은 차 타고 나들이 가는 길에 쓰자고 집어 들었다. 나는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말렸다. 그는 그런 나를 보며 한숨을 내쉰다. 불안한 내 눈과 마주쳤다. 신랑의 답답한 마음이 목구멍까지 꽉 찬 게 보인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라, 이제는 화내지 않고 참으니 다행이다. 그런데 때마침 뉴스 보도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