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활짝 핀 수목원을 걷다 보면, 두 팔로 핸드폰을 쭉 뻗어 화면 가득 꽃을 담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요리조리 열심히 핸드폰 각도를 돌려가며 아름다운 꽃의 모습을 담으려 노력하는 그 사람들은 대부분 나이가 지긋하게 든 어르신인 경우가 많다. 몸은 늙어도, 마음은 늙지 않는지. 열정적으로 꽃 사진을 찍고 있는 저 어르신의 마음이 꽃처럼 싱싱한 것만 같아, 무표정으로 걷던 내 얼굴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다.
우리 외할머니도 꽃을 참 좋아하신다. 축하할 일이 있을 때, 고운 빛의 생화를 드리면 참 기뻐하시곤 한다. 나는 외할머니의 그런 모습이 좋다. 외할머니가 외삼촌이랑 외숙모를 괴롭힐 때는 정말 밉고 나에게 그녀의 피가 흐른다는 것에 절망을 느낄 때가 있는데, 달아나는 정(情)을 잡아주는 것은 아이처럼 순수한 외할머니의 마음이다. 예쁜 그 마음이 가장 또렷이 형체를 드러낸 것은 만 75세, 천주교 세례를 받은 직후였다.
그전까지 내가 아는 외할머니는 그 누구보다도 무속신앙에 돈과 영혼을 바치던 사람이었다. 우리 엄마의 광적인 모습도 외할머니가 무속신앙을 숭배하는 행위나 믿음에서 물려받은 부분이 많았다. 어떤 미신 행위에 꽂히면, 온 가족에게 그 행위를 강요하며 굉장히 피곤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랬던 외할머니가 외할아버지 제사를 집에서 드리지 않고, 성당에 위령미사를 올린다고 하다니! 가족들은 외할머니의 변화를 기쁘게 받아들였다. 또한 그것이 끝이 아니라 외삼촌과 외숙모도 외할머니를 따라 세례를 받더니, 우리 엄마도 천주교인이 되었다.
무엇이 우리 외할머니를 천주교로 돌아서게 했을까? 내 생각엔 아마도 외로움이었던 것 같다.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고 혼자 살기 시작하며 외할머니는 열심히 일하셨다. 젊은 시절의 실수로 아직 빚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외할머니는 자신이 혼자가 되면 당연히 자식이 모시고 살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빚이 있으니 떳떳하게 같이 살자고 할 수 없었다. 아들에게 집착하는 마음이 원동력이 되어 칠순이 넘어서까지 남의 집에서 식모살이하며 악착같이 돈을 벌었다. 그러다가 노인에게 일을 시키는 것이 불편하니, 더는 나오지 말아 달라는 직업소개소 직원의 부탁에 일을 그만두었다. 다행히 빚은 다 갚았기에, 외할머니는 아들과 같이 살고자 하는 소망을 내비쳤다. 하지만 아들뿐만 아니라 두 딸 들까지 서로 떨어져 사는 게 좋지 않겠나 하고, 무속인에게는 아들과 거리를 멀리할수록 아들이 잘 될 거라는 말까지 들었다. 그 말이 퍽 서운했을 터였다.
그렇게 홀로 다세대주택 반지하에서 서글프게 살아가던 어느 날, 꿈에 하느님이 나와서 자신을 믿지 않는다고 꾸짖었고 두려운 마음에 성당에 나가셨다고 한다. 외할머니는 평생 무속신앙에 빠져있어서 그런지 꿈속 ‘하느님’의 모습은 ‘야누스’라는 신과 비슷한 점이 많다. 사람 머리에 얼굴이 사면(四面)이 있었고 그 얼굴들이 빙글빙글 돌아가면서 아주 무섭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칠순을 넘긴 외할머니가 생애 처음으로 성당에 스스로 갔으니, 교인들이 그녀를 얼마나 신기해하고 반겼을까. 아마 평생 받아본 적이 없는 관심과 사랑을 받았을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환대받으며 축복의 인사를 들었을 것이다. 외할머니는 인생 끝자락에 가장 큰 기쁨을 누렸다. 나는 기독교에서 새로 온 사람을 대하는 그 태도가 참 좋다고 생각한다. 마치 어린아이가 첫걸음마를 내디딜 때처럼, 모든 사람이 응원하며 사랑이 넘치는 말을 해준다.
외할머니가 아들에게 집착하는 모습 그리고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과도한 친절을 베푸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애정결핍이 심한 아이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런데 성당에서 사랑을 듬뿍 받으며 다녔던 첫해에는 외할머니의 그런 모습이 사라졌었다. 그래서 외삼촌과 외숙모가 감동하여 천주교인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천주교는 미사를 드릴 때마다 가슴을 치며 세 번씩이나 ‘내 탓이오’ 한다. 그렇게 하다 보니 자기반성이랄까, 외할머니가 잘못을 인정하는 마음을 갖게 된 것 같다. 자식들이 마음 아팠던 과거의 이야기를 하면 그래도 듣는 척을 하고 ‘내가 그랬냐’고 한다. 좋은 변화다.
외할머니네 하룻밤 자러 갔을 때 예전 일기를 봤는데, 어떤 마음으로 성당을 다니셨는지 느낄 수 있었다.
2009년 1월 11일
오늘은 왜 이렇게 마음이 아프고 눈물이 자꾸 흐를까.
어린 아이가 어머니의 젓줄을 놓은 듯 힘이 빠지고 허전하다.
본당 신부님은 도화동 성당으로 부임을 받으시고 부 신부님은 로마로 유학을 떠나신단다.
나는 너무 늦은 나이에 최고의 하느님을 깨달았다.
2008년 6월 1일 입교를 하였다. 그로부터 두 신부님을 뵈옵게 되었고 부 신부님으로 교육을 받았다.
그러부터 6개월 여 동안 교육을 받고 세례를 받았다.
그러는동안 외로웠고 허전한 이 마음이 의지가 되었나보다.
오늘 두 신부님의 마지막 미사를 받으며 마음이 아파오며 어린 아기에 입에서 어머니의 젖꼭지를 뽑아내듯이 아 하고 울고 싶은 마음을 억지로 참고 아무렇지 않은 양 두 신부님께 인사를 드리고 성당을 뒤로 하고 돌아섰다.
아~~~ 정말 왜 이렇게 마음이 허전할까.
잊을 수 없는 날이 될 것 같다.
나도 다 컸지만 내 안에는 ‘어린아이의 마음’이 있다. 순수하고 여린 마음. 특히 사랑받길 좋아하고 좋으면 쉽게 기뻐하고 들뜨는 마음. 그 마음은 우리 외할머니에게도 있었다. 그녀의 표현을 빌리면 ‘어머니의 젖꼭지를 빠는 아기’의 마음일 것이다. 나는 외할머니에게 아기의 마음이 있다는 것이 참 좋았다. 외할머니가 그 마음을 가졌다는 사실 만으로 애정이 생기고, 못난 모습들이 밉게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너무 늦은 나이’라고 했지만 세례받은 지 만 12년이 지났다. 하느님을 몰랐던 지난 인생에서 큰 빚을 져서, 이제 그 빚을 갚아야 하는 것처럼 외할머니는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신앙생활을 하셨다. 견진성사를 받을 때까지는 배워야 하는 것이 많아서 오히려 즐거우셨다. 글도 읽을 줄 알고 암기력이 매우 뛰어나서 누구보다 칭찬도 많이 받아 뽐내는 기분도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이제는 성숙한 교인이 되어야 했고, 어린아이처럼 사랑과 관심을 그저 받고만 싶은 외할머니는 성당의 문제아가 되었다.
외할머니가 잘 해낼 수 없었던 부분은, 지나온 그녀의 인생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다른 사람과 함께 어울리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 그래서 교인들과 함께하는 활동들은 모두 내려놓고, 외할머니에게는 기도와 미사만 남았다. 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이제는 작은 방에 갇혀, 우울한 뉴스가 흘러나오는 텔레비전만 보며 하루하루 보내고 계시다. 나는 외할머니 안에 있는 아기의 마음이 없어질까 두렵다. 그 예쁜 마음을 다시 보려면 외할머니에게 사랑을 듬뿍 주어야 하는데. 사실 딸, 며느리, 손자, 손녀의 사랑 다 합쳐도 하나뿐인 아들의 사랑이 외할머니에겐 가장 클 것이다. 그거 하나면 충분하지. 하지만 나는 누구보다 외삼촌의 마음을 잘 알기 때문에,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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