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6) 썸네일형 리스트형 [소설] 부군에게 쓰는 편지 당신이 돌아가시고 20년도 더 넘어버렸습니다. 당신이 누워계신 산소는 아들이 개선하여 유골함을 더 모실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제가 직접 가보니 처음 봉분을 만들었을 때부터 떼가 잘 살고 빛깔이 좋았는데, 여전한 모습입니다. 이제 나도 당신 옆에 누울 준비가 끝나갑니다. 내 삶이 끝난다면 당신 옆에 가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22살 노처녀이긴 했으나, 당신이 북에 처와 아들을 두고 왔다는 사실을 숨기고 나와 결혼했다는 사실을 용서하기 힘들었습니다. 북에 계신 형님은 얼마나 가슴이 쓰라렸을지, 그리고 나와 결혼한 날 당신은 어땠을지 생각했습니다. 그 마음을 헤아리다 보면 저는 행복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결혼에는 연민이 남았습니다. 고향에 돌아갈 수 없는 당신이 불쌍했습니다. 하.. [소설] 겨울 작은방 안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여자가 있다. 먼저 방문 옆에 커다란 파란색 이삿짐 상자를 펼쳐두었다. 장롱문을 열고 안에 있는 몇 벌 남지 않은 옷가지를 꺼내어 침대 위로 가져갔다. 한 벌씩 가지런히 개켜 모은 후, 옷가지를 모아 커다란 투명색 비닐로 꼼꼼히 싸매어 상자 안으로 넣는다. 이제 여자는 책상 앞에 섰다. 책장에 꽂혀 있는 전공 서적과 어릴 때부터 모아두었던 상장이 들어있는 바인더, 사진 앨범을 꺼내어 상자로 옮겼다. 책상 서랍을 열어 갖가지 필기구와 잡동사니를 철제 과자 상자에 옮겨 담아 파란 상자에 넣었다. 마지막으로 신발장을 열어 구두와 운동화 두어 켤레를 꺼냈다. 신발마다 준비한 부직포 가방에 넣고 끈을 조였다. 신발 가방도 차곡차곡 파란 상자에 가지런히 넣었다. 이렇게 짐을 다 쌌는데.. [소설] 가을 남자는 항상 고독했다. 이맘때면 특히 더 외로움에 빠지곤 했다. 가로수에 무성했던 싱싱한 이파리가 붉게 물들어 가면 초조해졌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새파란 하늘이 불어주는 바람 한 점에 우수수 떨어지는 모습을 볼 때면 마음이 더없이 허전해지고 말았다. 옆에 사람이 있으나 없으나 그는 언제나 마음이 시렸다. 연인을 품에 안을 때면 잠깐 뜨거운 열기를 느끼기도 했지만, 그 열기는 펄떡거리는 심장이 잠잠해지면 땀과 같이 허무하게 식어버리곤 했다. 고독은 그가 태어날 때부터 함께했고, 생을 살아가는 동안 그와 한 몸이 되었다. 그는 이 느낌이 익숙하고, 이제는 놓아줄 수 없을 만큼 간절하게 원하기도 했다. 아직 빨래통에 있는 반소매 윗도리가 무색해질 만큼 급격히 추워진 바깥 공기에 뺨이 제법 차가.. [단편] 술주정 낮이고 밤이고 가리지 않고 푹푹 찌는 무더위가 지나고, 해 저물면 선선한 바람이 불기도 하는 여름밤. 깜깜한 어둠 속에 노랗게 불을 밝히고 있는 작은 술집에 한 사람이 앉아있었다. 그가 앉아 있는 상 위에 남은 식기와 안주의 모양새가 조금 전까지, 여럿이 함께 있었다고 짐작할 수 있으나 이제는 모두가 떠나간 술자리에 홀로 남아있었다. 그는 한쪽 볼에 팔을 괴고 앉아 맑은 소주병을 예사롭지 않은 눈빛으로 쏘아보고 있었다. 뜨겁게 달아오른 얼굴, 내쉬는 숨에서 풍기는 강한 알코올 냄새로 보아 제법 취한 듯하다. 소주병을 마주 세워두고 그는 주정을 시작했다. 나도 취할 자격이 있어. 취해서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고. 그거 좀 그냥 말하게 두고 들어주면 안 되는 거야? (검지손가락으로 소주병을 위협하며) 야, .. [소설] 판타지아 그녀는 침대 밖으로 나른하게 늘어져 있던 오른팔을 들어 올려 머리맡에 있는 핸드폰을 찾았다. 애인의 몸에 깔려있던 반대쪽 팔을 힘주어 빼낸 뒤 바로 누웠던 몸을 뒤집어 침대에 엎드렸다. 그새 잠이 든 남자는 그녀의 팔이 몸에서 떨어지자 벽 쪽으로 그녀를 등지고 돌아누웠다.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그녀는 살짝 한기가 느껴지는 것 같아 다리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간 이불을 끌어 몸을 감쌌다. 이불은 솜이 가볍게 누벼져 있어 따뜻하면서도 겉감은 감촉이 부드러운 60수 면 원단이라 맨살에 닿았을 때 포근하고 기분이 좋았다. 색은 파스텔 톤에, 잔잔한 꽃무늬로 되어있어 귀엽다. 이불을 감싸 안으면 어린 강아지를 안고 있는 듯해서 그녀는 이 이불을 좋아했다. 이불 밖으로 하얗고 날씬한 두 발을 내어놓고, 무릎을 굽혀 .. [소설 쓰기] 소설을 쓰기 전 고민 코로나 시대의 흐름을 타고 언택트 프로젝트로 야한 소설 쓰기에 도전해보았다. '소설도 처음 쓰는데 야한 걸 쓰다니! 어떻게 쓰지?' 하면서도 정말 재밌을 것 같았다. 그래서 참여했다. 이 프로젝트에서는 창작자에게 혼을 불어넣기 위해 리소스를 제공해주었다. 창작하기 전에 영감을 얻어야겠다는 마음으로 추천해준 소설과 영화를 봤는데 충격을 받았다. 내 시선에서 '야하다'는 건 나에게 호기심과 욕망을 자극하는 것이고 즐거움을 주는 것인데. 그 작품들은 나를 너무나 불편하게 했다. 정리해보자면 이런 것들이었다. 여성을 남성의 욕구 충족을 위한 도구로 보는 시선 여성의 신체는 수치스러운 자세와 부위까지 세밀하게 묘사하나, 남자의 신체는 근육이 멋있다거나 성기가 크다는 등 ‘우월함’만 강조 작품이 성을 착취하는 도구..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