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로 사람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면, 나는 좁은 인간관계를 갖고 있다. 주변에서 많이 하는 이야기가 나이가 들수록 새로 사람을 사귀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그랬다. 관계를 맺는다는 것 자체가 두려웠다. 그건 아마도 내 마음이 불안정했고, 가족으로 대표되는 주변의 관계가 그런 나를 평온하게 해주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감정이 예민한 아이였다. 부모님은 내가 사춘기를 큰일 없이 보냈다고 하지만 그건 나를 이해하지 못해서 할 수 있는 말이다. 나에겐 ‘질풍노도(Sturm und Drang)’의 시기가 정말 말 그대로 폭풍이 몰아치고 파도가 덮치는 바다에서 살아남는 것만큼 힘들었다. 작은 환경의 변화나 한 사람의 말에도 내 마음에는 큰 파도가 일렁였다. 그런데 잦은 이사로 초등학교 때 전학을 두 번 한 것이 나에게 너무나 버거웠다.
새로 친구를 사귀는 것은 무서운 일이었고, 나는 먼저 나서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신기하게도 항상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들은 아마도 불안정했던 나를 받아줄 만큼 태평양 같은 넓은 마음을 가진 아이들이었을 것이다. 나는 친구들에게 부족한 나를 품어주는 온정과 불안할 때 기댈 수 있는 평안을 바랐다. 그리고 기억나는 몇몇 친구들은 나에게 가족보다 더 큰 안정을 주었다.
그러다 보니 넓게 여럿을 사귀기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한두 친구와 많은 시간을 함께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깊은 관계를 만들어갔다. 이런 인간관계를 통해 내가 얻은 것은 ‘사람을 신뢰하는 마음’이다. 한 사람과 많은 시간을 공유하다 보면 그 사람의 삶에 들어갈 수 있다. 삶을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방황도 하고, 나쁜 행동을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것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란 걸, 친구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깨달았다.
내가 새로 관계를 맺는 사람이 나에게 불쾌하게 하면 ‘나쁜 사람’이라는 낙인을 찍기보다는 ‘그렇게 하면 내가 상처받는다’고 이야기하는 편이다. 내가 목소리를 내면 대부분은 다시 태도를 고친다. “아니 그게 아니라~” 하면서. 계속 만나고 이야기하다 보면 분명 그 사람에게도 좋은 점이 있다. 모든 관계에 통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사람 자체를 편견 없이 보고, 신뢰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인지 요즘에는 새로운 사람과 만날 때, 나를 소개할 때 나의 배경이나 경험 보다 그냥 지금의 나를 그대로 보여주려고 한다. 나이, 경력, 학력 이런 이야기 보다는 내가 지금 어떤 것에 관심이 있는지, 요즘 빠져있는 책이 무엇인지 이야기 하는 것이 즐겁다. 상대방에게 궁금한 것도 최근의 관심사라든지 재밌게 하고 있는 활동 같은 것들이다.
이렇게 새로 만들어가는 인연도 소중하지만 역시나 나는 오래된 관계가 주는 평화로움이 좋다. 첫째로는 나의 질풍노도의 시기를 함께 견뎌주었던 친구들이 참 고마워서. 둘째로는 어떤 설명으로 포장하지 않은 알맹이 그대로의 나를 봐준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부터 계속 모임을 가진 친구들과 벌써 20주년을 바라보고 있다. 성장하면서 내 마음을 스스로 추스르는 법을 알게 되고, 혼자 먹고 살아갈 능력이 생기니 예전만큼 주변 환경에 흔들리지 않게 되었다. 이제는 내가 친구들에게 어떤 것을 기대하지는 않는데, 그냥 같이 있으면 편하고 좋다. 나도 그들의 곁에서 포근한 안정을 주는 존재가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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