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에 대해서 써보고 싶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3부로 나누어 쓰려고 한다.
1부. 전쟁으로 헤어진 가족의 슬픔을 떠안다
나이가 든다는 건 무얼까. 몸이 아프고, 힘이 없어지고, 기억력이 감퇴하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런 부정적인 것들만 생각할 때가 있다. 엄마가 외할머니랑 대화하고 나서 나에게 투정 부리는 걸 듣고 있자면, 아흔을 바라보인 노인(老人)이란 존재가 이 세상에 살아갈 의미가 없는 것만 같다. 재개발 지역의 오래되고 낡은, 곧 사라질 주택처럼.
몇 년 전, 부모님과의 다툼 끝에 도피처로 외할머니의 집을 택했던 때가 있다. 외할머니와 단둘이 하루 넘게 있었던 적은 인생에서 몇 번 없었다. 외할머니는 나이가 들어서 ‘어르신을 부려 먹는 것 같아 마음이 안 좋습니다. 이제 나오지 마세요’라는 말을 들을 때까지 고되게 일하셨다. 이제는 몸이 아파 봉투 붙이기 정도의 소일거리만 하시고, 그래서 나와 함께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어렸을 때는 외할머니를 ‘여인’으로 본 적이 없었는데, 나도 철이 들고 만나서 이야기하다 보니 한 여인으로서 그의 인생에 공감하고 슬픔과 기쁨을 이해할 수 있겠더라. 태어나서 처음으로 외할머니와 깊이 대화 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이렇듯 작고 여린 한 사람의 몸에 주름과 함께 역사의 이모저모가 함께 담겼다는 것을 느꼈다. 그날 밤은 한 편의 역사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았다.
우리 외할머니는 1933년생, 열일곱 살의 나이에 6·25 전쟁을 경험했다. ‘그때는 누구나 겪은 일이야’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래, 할머니 세대에 전쟁을 겪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 그러나 전쟁의 상처와 분단의 아픔은 사람마다 다르게 새겨지는 것이 아닐까. 다 같은 인생이 아니니까.
전쟁 이후 외할머니 고향 땅에서는 일거리를 찾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취직시켜준다는 말에 서울로 올라왔는데, 일자리는 구해주지 않고 남자와 선을 보게 떠밀었다고 한다. 외할머니는 결혼 자체를 원하지 않았고, 그래서 그 시대에서는 드물게 스물두 살의 나이에도 독신이셨다. 누구의 계략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 ‘취집’을 했다.
그런데 그 결혼이 사기 결혼이었다. 요즘 같으면 법원에서 혼인 무효 소송을 진행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외할아버지는 이북에서 이미 결혼하셨고, 아내와 어린 아들을 두고 서울로 오셨다. 결혼할 때 외할머니에게 이 사실을 말하지 않고 나중에서야 아이 낳고 살면서 이야기하셨던 것 같다.
전쟁으로 가족을 잃고, 분단으로 가족과 헤어지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아픔이다. 그런데 내 것이 아닌 상처가 강제로 내 가슴에 이식이 된다면 어떨까. 외할머니 가슴의 응어리는 다른 사람의 비극을 떠안아 생긴 한(恨)이다.
정정당당하게 결혼한 부부 사이에도 남편이 미울 때는 세상천지에 없는 원수 같은데, 두 번째 결혼을 처음인 것처럼 속인 남편은 얼마나 미웠을까. 외할머니는 평생 남편을 신뢰하지 못했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만큼 의심과 불안으로 가득 채워서 많이 싸우셨다고 한다.
외할아버지는 공무원이셨는데, 온 동네 사람들이 존경할 만큼 바른생활을 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아침 일찍 일어나 빗자루로 동네 골목을 깨끗이 쓸고, 겨울에는 미끄럽지 않게 연탄재를 뿌려주는 어르신이었다. 창호지 문도 매년 겨울이 오기 전에 손수 풀을 먹여 갈고, 아이들과 함께 만두도 빚는 가정적인 남편이었다. 지금 봐도 일등 신랑감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외할머니는 그런 외할아버지와 많이 싸우셨다고 하고, 자식들은 그런 엄마를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이 슬프고 불합리한 결혼 이야기를 듣고 나니 외할머니의 외할아버지를 향한 곱지 못했던 시선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외할머니는 남편의 상처를 품고 그의 가족을 위해 정성을 다해 기도하며 살고 있다. 그는 살면서 한 번도 이북에 있는 남편의 아내와 가족들에 대해 나쁘게 생각하거나 말 한 적이 없다. 오히려 불쌍히 여기고 기도하며 눈물짓는다.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 외삼촌과 여러 번 신청하셨는데,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순위가 밀렸다고 안타까워하신다. 결국 만나지는 못했고 소식도 듣지 못하고 있다.
이북에 있는 '형님'에게 외할머니가 쓴 편지가 있다. 편지를 보낼 기회가 올까 하고 써두셨던 것 같다.
북에 있는 형님께.
시대를 잘못타고 난 여러사람들의 운명은 너나 할 것 없이 기구한 세상을 사라왔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OOO군의 아버님과 결혼한 OOO라고 합니다.
저는 중매로 22살에 결혼하여 일남 이녀 두고 살아왔읍니다.
결혼하고 지나다보니 북에 부모님과 형제 그리고 처와 아들이 계시다는 것을 알았읍니다.
OOO 형님 수십년을 쓰라린 가슴을 부여안고 살아오셨을 것입니다.
OOO 아버님도 수십년을 터지는 가슴을 부여안고 살았을 것입니다.
OOO 아버님의 연세가 33살에 결혼하였습니다.
음 3월 26일 날 OOO 아버님은 결혼하는 날 하늘에서 벼락이 내린 듯 했다고 하는군요.
그러고 보면 저도 역시 행복한 결혼 생활은 않인 것 갔읍니다.
형님, 제 가슴도 북에 가족을 생각하면 아픈 마음 금한 길 없어 이 글을 올립니다.
형제님들께서는 잘 살고 계시는지 남편이 살아게시여 이 안부를 여쭈어야 되는데 이렇게 제가 안부를 여쭙게 되어 한 없이 죄송합니다.
그리고 서울에 형제님은 다 돌아가시고 한 분도 안게십니다.
북에 게신 시동생분은 잘 살고 계시는지요. 여러남매가 살고게시는 줄 압니다.
그러나 이름을 알지 못하여 일일이 였줍지 못하여 대단히 죄송합니다.
북에 게신 시숙 OO, 시숙 아들이 OO, 그리고 시누이 이름을 알지 못하나
언젠가는 우리가 만날 날이 있겠지요. 그 날까지 몸건히 게시다가 한 번 꼭 맛나기를 발하면서 이 글을 맟이겠읍니다.안녕히게세요.
OOO
이 나라의 비극을 함께 살아온 한 여인. 우리 외할머니는 그냥 할머니가 아니구나, 역사적 가치가 있는 존재구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외할머니가 살아계시기 때문에 그 가치를 모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노인이 세상을 떠나면, 누가 이 아픔을 알까. 이 목소리를 들을 수 없을 텐데. 외할아버지도 이미 떠나셔서 그의 목소리로 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는데. 노인들이 다 가고 나면 역사책으로만 남겠지 하는 생각에 마음이 쓸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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