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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이야기] 나의 사슴벌레

 



사슴벌레에게 참나무는 자신이 태어난 고향이자, 안전하게 성장할 수 있는 보금자리이며, 먹이를 주는 양분이다. 참나무가 쓰러져 땅에 묻히고 눈 이불을 덮고 시간을 보내면 사슴벌레는 나무 안으로 들어가 알을 낳는다. 알에서 애벌레가 깨어나 톱밥을 먹으며 자라고, 다 자라면 번데기가 되었다가 나무 밖으로 나온다. 다 큰 성충 사슴벌레가 되어서도 여전히 참나무즙을 가장 좋아해 곁에 머문다.
 
    아이와 함께 넓적 사슴벌레를 키우면서 참나무와 톱밥을 많이 만지며 놀았다. 촉촉하게 물을 뿌려주어야 사슴벌레가 좋아한다. 물을 머금은 나무는 포근하면서 잔잔한 자연 냄새가 난다. 적당한 습도와 온도 그리고 시간이 만나면 참나무에는 버섯이 핀다. 버섯이 핀 참나무는 암컷 사슴벌레가 알을 낳기에 가장 좋은 나무다. 아이의 손으로 나무를 잡아 뜯어도 어렵지 않게 껍질이 벗겨지고 결대로 갈라진다. 애벌레들은 보드라운 나무속을 야금야금 갉아먹으며 몸집을 키운다.
 
    나무는 내 생각보다 영양분이 풍부했는지 정말 신기하게도 그 작은 애벌레가 커다랗게 몸집을 키우고, 단단한 껍질을 가진 성충으로 자라난다. 번데기에서 탈피하고 나온 사슴벌레는 윤기 나고 깨끗하다. 성충이 되어서도 나무즙만 먹어서 그런지 냄새도 나지 않고 깔끔하다. 곤충에게는 칭찬이 아니겠지만 겉껍질이 딱딱하고 몸집이 큰 편이라 움직임이 느려 얌전하기도 하다. 깨끗하고 얌전한 사슴벌레의 모습은 닮고 싶기도 하다.
 
    곤충은 인간에 비하면 수명이 매우 짧다. 사슴벌레의 수명은 일 년 남짓이지만, 실제로 활발히 활동하는 시기는 평생에 두 달도 안 된다. 나머지 시간에는 나무속에서 조용히 성장하고, 껍질이 여물어 가고, 짝짓기하기 적합한 더운 여름을 기다린다. 여름이 되면 부지런히 먹고, 짝을 찾고, 번식하다가 철이 지나면 다시 안식처로 돌아간다. 아마 대부분은 땅에 묻힌 통나무 속이나 그 아래로 파고들어 숨죽이고 있다가, 고요하고 아늑한 마지막 잠에 빠져들겠지.
 
    겨울에 눈 덮인 산길을 오르내리다 보면 하얀 눈 아래로 살짝 나무껍질이 보일 때가 있다. 이제는 그냥 지나치지 않고 아이와 함께 그 나무 안에 있을 사슴벌레와 애벌레를 짐작해 보고 귀도 기울이며 흔적을 찾아본다. 아이는 사슴벌레를 왜 좋아했을까. 나에게 사슴벌레는 무슨 의미일까. 나중에 크고 나서도 우리가 키웠던 사슴벌레와 그의 한살이를 아이는 어떻게 기억하고 이야기할까. 참나무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면, 나무에 담긴 우리의 추억도 사라지지 않겠지. 세월이 흘러 아이와 다시 사슴벌레를 찾고 이야기 나눌 날을 바라본다.



+ 사육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