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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이야기] 나는 왜 엄마가 되고 싶었나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인생 N 회차’ 등 회귀물이 인기다. 지금의 기억과 경험을 그대로 안고 과거의 나로 돌아간다면 더 현명하게, 최선의 선택만 하며 더 나은 삶을 살아갈 거라는 상상. 그것이 주는 통쾌함 때문에 나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좋아하나 보다. 하지만 나는, 시간을 정말로 돌릴 기회가 생긴다면 거절하고 싶다. 거창한 이유는 아니고, 내가 다시 ‘엄마’가 될 수 있을지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엄마가 되기 전의 나는 엄마가 되고 싶었다. 어린 시절부터 아이를 좋아했다. 같이 뛰어놀면 금세 깔깔거리고 웃는 얼굴이 좋았다. 중·고생이 되어서도 교복 입고 놀이터에 나가 동네 애들과 얼음 땡 하고 놀아서 철없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다. 해외여행을 가서도 어느 나라든 상관 없이 모든 아이에게 관심 주고받으며, 금방 친해져서 같이 놀곤 했다. 봉사활동으로도 아이를 가르치는 경험을 하며 나는 끊임없이 어린이를 만나고 시간을 보냈다.
 
 
    아이를 알아가다 보면 정말 신기하게도, 아이가 자기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진실하게 느껴졌다. 특히 주 양육자, 많은 경우 엄마를 향한 아이의 사랑은 순수하면서 온전한,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사랑의 모습이었다. 이모나 선생님이 아무리 즐겁게 놀아주고, 엄마가 무섭게 혼을 내고 놀아주지 않아도 엄마를 향한 사랑은 흔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걸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나도 어릴 때는 엄마를 정말 좋아했다. 엄마를 사랑하는 만큼 엄마에게 사랑받으려고 노력했지만, 엄마는 바빴고, 남동생도 있어서 슬프던 적이 많았다. 조건 없이 엄마를 사랑하고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마음으로 엄마만 바라보았는데, 엄마는 기분이 좋을 때만 곁을 내주었을 뿐이다. 만약 내 아이가 있다면 아이와 나 사이의 사랑은 언제나 부족함 없이 온전해지리라 꿈꿔왔다.
 
 
    그리고 이제 나는 한 아이의 엄마다. 꿈꾸었던 미래가 현실이 되고 나니, 행복하면서도 자신감이 없어진다. 아이의 무한한 사랑을 받는다는 건 축복이면서도 그 기대에 부응하려 애쓰는 걸 멈출 수 없어 하루하루가 고되다. 아이는 내가 주는 사랑과 관심에 만족하지 않고 더 원한다. 놀이터에서 몇 시간을 함께 뛰놀며 깔깔거리고 웃다가도, 집에 가자고 하면 울음을 터뜨린다. 하루 종일 사랑을 속삭이고 애정이 어린 손길로 먹여주고 보듬어줘도, 이제 잘 시간이라고 하면 투정 부리며 오늘 하루 즐거운 일이 하나도 없었다고 말한다.
 
 
    참 어렵다. 사랑받고 사랑 주는 일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질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차라리 애인과의 사랑이 편하다. 좋은 건 좋다고, 싫은 건 싫다고 말할 수 있고, 노력하면 사랑이 커진다고 느낄 수 있다. 사랑을 키우면서 커지는 사랑에 만족할 수 있다. 아이와의 사랑은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아이에게 만족을 줄 수 없어 힘들다. 내 아이를 키우기 전 예상했던 고난은 엄마가 아이의 사랑을 외면하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고, 현실은 사랑에 목마른 아이에게 모든 걸 내어줘도 갈증을 해결해 줄 수 없는 부담감, 내가 점차 고갈되어 간다는 두려움이 앞에 있다. 그러니 시간을 되돌린다면 선뜻 내가 엄마가 되는 길을 선택하려나.
 
 
    아이를 고민 중인 친구가, 자기는 애정결핍이 있어서 아이를 건강하게 키우지 못할까 봐 두렵다고 말했다. 나는 아이가 생기면 애정은 넘치게 받으니, 사랑을 받을 준비만 하면 될 거라고 말해주었다. 내가 힘든 이유도 아이에게 사랑을 주려고 너무 힘쓰기 때문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아이에게는 아이가 주는 사랑을 온전히 받아주고 사랑에 겨워 행복하게 웃는 엄마가 제일 소중할지 모른다. 나는 아이가 만족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내가 사랑을 받을 줄 몰라서 아이의 사랑을 그냥 흘러버린 건 아닐까. 더 이상 줄 것이 없어 메마른 나의 가슴을 아이의 사랑으로 흘러넘치도록 채울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