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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이야기] 그칠 줄 모르는 불안

     나는 쉽게 불안해진다. 불안한 감정이 나뿐만 아니라 가족에게도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걸 잘 알면서도, 나의 불안은 그칠 줄 모른다.

 

      신랑이 테무에서 물건을 주문했다. 그중 하나는 차량용 가습기였다. 국산 제품을 두 개나 썼었는데 둘 다 쉽게 망가져 버렸다. 어차피 잘 망가지는 거, 저렴한 게 낫다며 주문했다. 그런데 나는 집에 도착한 가습기를 바라보기만 할 뿐, 선뜻 켜지 못했다. 신랑은 차 타고 나들이 가는 길에 쓰자고 집어 들었다. 나는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말렸다. 그는 그런 나를 보며 한숨을 내쉰다. 불안한 내 눈과 마주쳤다. 신랑의 답답한 마음이 목구멍까지 꽉 찬 게 보인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라, 이제는 화내지 않고 참으니 다행이다. 그런데 때마침 뉴스 보도가 나온다. 테무에서 파는 상품에서 나온 유해 물질이 기준치를 초과했다고 한다. 이런! 이 가습기는 도저히 쓸 수 없는 물건이다. 나쁜 물질이 우리 가족의 호흡기로 침투하게 둘 수 없는 노릇이니까. 다행히 신랑도 아내 말을 잘 듣기로 하며 가습기를 버리기로 했다.

 

      불안 하나가 사라졌다. 하지만 또 다른 불안이 나를 채우기 시작한다. 신랑이 예전만큼 나를 사랑하지 않는 느낌이다. 이렇게 그냥 사랑도, 경력도 없이 늙어가야 하는 걸까 불안하다. 신랑은 이제 어떻게 하면 나와 함께 행복할 수 있을까 고민하지 않는다. 돌아오는 어린이날에 신랑 친구 결혼식이 있다. 새 부부와 우리 가족은 캠핑과 여행을 함께 한 적도 있으니, 결혼식에 같이 갈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신랑은 혼자 다녀오겠다고 선언했다. ‘너네는 와이프한테 잡혀 살지? 나를 봐라, 나는 자유다!’ 이렇게 외치고 싶은 걸까. 뭐든지 나와 함께 하려 애쓰던 모습은 사라졌다. 이제는 미안해하면서 어린이날 못 해준 만큼 더 잘하겠다는 사탕발림도 없다. 신랑의 행복을 위해 나는 한 걸음 물러서고 만다. 하지만 이렇게 사랑이 시들해지는 모습을 마주하니 씁쓸하다.

 

      불안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이제는 사랑보다는 아이를 잘 키우는 공동체가 우리 부부인 듯하다. 대화할 때도, 인생 계획을 짤 때도 모두 아이 중심이다. 신랑과 이런 이야기도 했다. ‘아이를 낳지 않고 사는 부부야말로 진정한 사랑꾼이다.’ 둘만의 사랑으로 평생 사는 게 진짜 사랑이라는 생각이다. 부부의 사랑이 저물어가는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걱정이다. 아이와 셋이는 잘 지내겠지만, 그걸로 충분할까? 우리 부모님을 보면 괜한 걱정인가 싶기도 하다. 내가 어릴 땐 아빠가 엄마를 부려 먹었고, 지금은 엄마가 아빠를 부려 먹는다. 딱히 낭만적인 관계는 아니지만 어쨌든 부부의 삶을 지속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낭만이 중요한 사람이다. 그래서 계속 사랑을 찾으려 하고, 충분하지 않으면 불안에 휩싸이는 가엾은 영혼이다.

 

      부부의 사랑을 뒷전으로 하며 아이를 키우고 있으나, 육아도 잘 해내지 못하고 있는 사실이 더욱 슬프다. 육아하면서 찾아오는 불안은 말 못 할 정도로 고통스럽다. 어릴 때부터 너무 공감을 잘 해줘서 아이가 커서도 눈물이 많은 걸까. 단점을 알면서도 억지로 고치려 하지 않아서 사회생활에 걸림돌이 되는 건 아닐까. 뭐든 스스로 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줘야 하는데, 아직도 아이 홀로 밖에 내보내지 못하는 내가 문제일까. 주말 내내 치킨, 라면, 피자를 먹은 게 문제가 되지 않을까. 내가 밥을 잘 차려주지 않아서, 과일을 실컷 먹이지 못해서 아이의 기침이 오래가는 걸까. 뭐든지 다 내 탓이고, 죄책감은 매일 산더미만큼 쌓여간다. 오늘은 아이 소풍 도시락 준비를 위해 장 보는 날이다. 오랜만에 신선한 재료를 가득 담아 상을 차려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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