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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이야기] 타임 코스모스

     <아기공룡 둘리>에서는 도우너타임 코스모스를 타고 여행 한다. 시공간을 넘나들기도 하고, 먼 곳으로 날아가거나 우주로 여행하기도 한다. ‘타임 코스모스는 거창한 기계가 아니라 바이올린에, 연주도 할 수 있다. ‘삐야삐야 깐따삐야 우주로~’하고 주문을 외우면 여행 시작이다.

 

 

고길동 어린시절로 떠나는 도우너, 또치, 둘리 (아기공룡 둘리: 얼음별 대모험 리마스터링)

 

 

 

      나의 타임 코스모스는 내가 버리지 못한 물건들이다. 물건에는 저마다 이야기가 있다. 어디에서 태어났고, 어떤 과정을 거쳐 내 손에 들어왔는지. 그리고 나에게 와서, 나와 어떤 일을 함께했는지 말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이 책이다. 지금은 꺼낼 일 없는 책도, 눈이 마주치면 이야기가 전해지니 버리지 못하고 책장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

 

      나뿐만 아니라 신랑도 책이 많다. 좋은 책이 있으면 구매하고 책장에 꽂아두며 만족감을 느낀다. 양가 부모님 댁에서는 정리한다고, 대청소할 때마다 책을 내놓으신다. 그러면 거기에서 도저히 버릴 수 없는 책을 골라내어 소중히 안고 집에 가져온다. 거실 한쪽 벽이 모두 책장인데, 그래도 자리가 없어 이중으로 얹어두고 있다.

 

      “도깨비 나올라.”

 

      부모님이 내 방을 들여다볼 때마다 하는 말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내가 책장을 보며 하는 말이다. 책도 많은데, 선반 공간마다 아이 물건이 가득 차 있다. 내 것은 버릴 게 없는데, 남편 책이나, 아이가 유치원에서 만들어온 작품은 없어도 될 것처럼 보인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모양새다. 아이에게 슬며시 물어보면, 아직 아니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우리 셋은 모두 닮았다.

 

      수납을 잘 해보려고 박스도 여럿 샀지만, 더 이상 둘 곳이 없다. 정리의 첫걸음이 버리는 일인데, 그걸 못하니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우리 엄마는 볼 때마다 제발 좀 버리라고 아우성이다. 그래서 최대한 엄마가 집에 오지 못하게 철벽 방어 중이다. 이 일로 엄마와 수없이 대치했고 나의 전략도 진화해 왔다.

 

      (잔소리 흘려버리기 전략)

      “내가 알아서 할게요.”

      “알아서 하긴 뭘 알아서 해!”

 

      (신랑 팔아넘기는 전략)

      “이 서방이 이거 버리지 말래요.”

      “아주 부창부수구나.”

 

      (감정에 호소하는 전략)

      “이제 대학교에서 봤던 책은 버려. 볼 일도 없잖아.”

      “이걸 버리면 돌아가신 교수님의 기억과 추억이 모두 사라져 버려요. 내가 이걸 보며 기억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어요.”

      “…….”

 

      그리하여 나의 타임 코스모스는 집을 가득 채우고 있다. 따로 주문을 욀 필요도 없고, 가만히 바라만 보면 시간 여행할 수 있는 물건이다. 버리지 않고 정리를 잘하고 싶다. 주변에서 수납 전문가의 노하우가 담긴 영상을 추천해 주었다. 그를 따라 하려 책장을 바라보다가, 또 하나의 책에 빠져들고 마는 내가 답답할 뿐이다.

 

      엄마는 원래 깔끔하게 살림하는 사람이지만, 암 진단을 받고 과감하게 정리를 한 번 마쳤다. 은행 계좌며, , 소장품, 사진까지 모두 없애버렸다. 그리고 지금도 정기 검사 결과를 앞둘 때마다 열심히 버리거나 나눈다. 정을 쏟으며 키운 식물과 화분도 아껴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 주었다. 엄마는 이렇게 정리해야 마음이 놓이는 걸까. 엄마를 회상할 수 있는 타임 코스모스를 더 많이 남겨주었으면 좋겠는데, 그래서 엄마가 떠나도 그 속에 파묻혀서 추억하고 싶은데…….

 

      하지만 엄마는 나와는 다른 사람이지. 아마도 엄마는 마지막으로 나에게 이렇게 말할 거다.

 

      “내가 베란다 정리를 못 했는데, 집에 가면 그거부터 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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