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야기

[이야기] 숙제

   

     아이들이 자라면서 숙제하느라 바쁘다는 말이 들린다. 우리 아이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벌써부터 학교 가기 싫다고 한다. 숙제를 해본 적이 없으면서 어찌 알고 싫다고 하는지 신기하다. 악명이 높은 '숙제'지만 학교에서는 제법 재밌고 인생에 오래 남을 기억이 되기도 한다. 이런 말을 하니 내가 꼰대가 되긴 했나 보다.

 

      라떼(나 때)는 말이야…….

 

      처음 만난 숙제는 유치원에서 내준 '자세히 관찰하기'였다. 아빠의 전공을 살려 자동차 그림을 그려서 가져갔다. 선생님의 의도는 식물이나 동물을 관찰하는 것이었겠지만, 나는 아빠에게서 자동차의 작동 원리를 배워갔다. 그림을 그리며 설명해 주었던 젊은 아빠의 얼굴이 신나 보였다.. 회사 일이 바빠서 얼굴 보기도 힘들었던 시절인데, 아빠가 나서서 도와줬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숙제는 이렇게 하면 되는 거라고 알려주고 싶었던 걸까.

 

자동차의 작동 원리를 설명하며 아빠가 나에게 그려준 그림

 

 

  초등학교에 가니 매일 숙제가 있었다. 국민학교가 초등학교로 이름을 바꾸긴 했으나, 우리 부모님보다 나이가 많았던 선생님의 가치관은 그대로였다. 선생님이 가장 강조했던 건 청결과 절약이다. 청결한 습관을 기르기 위해 학교에 작은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준비물로 챙겨갔다. 매일 수업이 끝나고 자기 자리를 청소하는 일이 숙제였다. 깨끗이 잘 해내야 집에 갈 수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은 청소 솔과 왁스로 복도와 계단을 청소했다.

 

      절약은 생활 전반에 적용했다. 양치하거나 손 씻고 물을 바로 끄기, 공책을 표지 바로 뒷면부터 쓰고 마지막 장 표지 안쪽까지 쓰기, 방학 일기를 달력 뒷면에 써오기 등이었다. 어린 나이여서 별생각 없이 선생님의 가르침을 익혔다. 습관처럼 종이를 재활용하며 살았다. 중학교 수행평가도 달력 뒷면에 해갔는데, 선생님이 크게 감동하셔서 전교에서 유일하게 나에게 만점을 주셨다. 이제는 나도 그런 학생을 만나면 가슴이 벅차오를 것만 같다.

 

      또 다른 기억의 남는 숙제는 직업 조사였다. 요즘엔 탐구 체험을 많이 하는데, 그 당시 숙제 이름이 조사였다. 나는 내 눈앞에 보이는 직업을 조사해 가기로 했다. 첫 번째 대상은 과일가게 사장님이었다.

 

수박은 얼마에 파시나요?”

 

      직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나는 그저 과일에 가격을 매겨서 파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물가를 조사해 갔다. 사장님은 웃으면서 수박, 포도, 사과 등 과일의 가격을 알려주셨다. 그리고 사장님이 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해야 할 것은 산수라고 했다. 학교에서 받은 <직업 조사하기> 표가 그려진 갱지 위에 열심히 받아 적었다..

 

      두 번째 대상은 경찰관이었다. 당시에 경찰서와 파출소를 구분할 수 없었던 나는 초등학교 바로 앞에 위치한 파출소로 직진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경찰관 두 분이 계셨다. 한 손에는 갱지, 한 손에는 연필을 쥐고 당당하게 물었다.

 

제가 경찰관을 조사하러 왔는데요.”

 

누가 누구를 조사한다고?”

 

      두 분은 크게 웃었다. 예상 밖을 벗어난 반응에 나는 당황했고 몸을 돌려 나가려고 했다. 그러니 이내 자리를 만들어 주고 숙제를 도와주셨다. 어렴풋한 기억 속에 경찰이 어떤 일을 하는지 받아 적고, 경찰에게 조사받을 일 없이 바르게 살라는 말을 들었던 것 같다.

 

      나는 수줍음이 많고 낯선 사람을 유독 경계했던 아이였다. 몇 살이냐, 어디 사냐 물어도 대답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오히려 입이 무거워 좋다고 하셨으나 엄마는 걱정이 많았다. 7살에 처음 다니기 시작한 학원을 찾지 못해 길을 헤맸을 때도 도움을 청할 줄 몰라 한 시간을 돌아다니다가 그냥 집에 온 적도 있다. 그랬던 내가 숙제를 하면서 사회성이 좋아졌다.

 

제가 숙제를 하고 있는데요, 도움이 필요해요.”

 

      용기 내 꺼낸 이 한마디에 모르는 사람도 나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동네 사람들은 어린이 눈높이에 맞춰 설명해 주었고, 박물관에서는 인쇄물을 건네주었다.

 

      좁았던 세상이 넓어지기도 했다. 방학 때면 '우리 동네 역사 문화유산'을 알아보라는 숙제가 있었다. 지금으로 말하면 체험학습인데, 나에게 '우리 동네'는 혼자 갈 수 있을 만한 곳이었다. 동네에 역사적 가치가 있는 장소를 다녀오니, 다음 방학 숙제로 할 게 없었다. 선생님은 동네를 넓혀보라 하셨다.

 

서울시를 우리 동네라고 생각하고 찾아보세요.”

 

      이 교과서는 부산에 있는 친구, 제주도에 있는 친구도 똑같이 보기 때문에 우리 동네를 좀 더 크게 보라는 말에 놀랐다. 우리나라 학생들이 같은 교과서로 공부하고 있다는 사실도 신기했다. 새로운 문화유산을 찾으러 동네를 넓혀서 가족과 더 멀리 나가볼 수 있었다.

 

      물론 발로 뛰지 않고 책상에 앉아해야 하는 숙제도 많았다. 받아쓰기에서 틀린 단어 10번 써오기는 참 귀찮았다. 일기장도 지금 보면 추억이 담긴 보물이지만, 그 당시에는 온몸을 비틀어가며 억지로 써 내려갔던 기억이 있다. 독후감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언제나 막막했다. 그러다가 선생님이 책 제목과 내 생각을 한 줄만 써도 된다는 말씀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여름 방학에 위인전 100권을 다 읽고, 한 줄 독후감을 100줄 써갔다. 스스로에게 매우 자랑스러운 기억이다.

 

      숙제하며 항상 보람을 느낀 건 아니다. 그러나 숙제는 내 세상을 넓혀주었다. 혼자 힘으로는 해보지 않았을 뜻밖의 경험을 선물해 주었다. 숙제 덕에 다양한 사람을 만났고, 새로운 일에 도전할 수 있었다. 어렵고 두려운 일은 도움을 받아 해내는 경험도 했다. 삶에 필요한 많은 지혜를 배웠다.

 

      하지만 결과물이 내 눈에 멋있지 않으면 학교에 제출하기 부끄러웠고 두려웠다. 다른 친구가 더 예쁘게 만들어온 걸 보면 내 숙제가 초라해 보였다. 숙제해내는 과정이 인생을 살아갈 밑거름이 된다는 걸 몰랐으니까. 나는 숙제를 훌륭히 해낸 학생이었다는 걸 이제야 안다. 이제라도 학창 시절 나에게 잘했다고 말해 주고 싶다.

 

      내 아이가 자기가 그린 그림이나 종이 접은 작품을 부끄러워하는 걸 보면 어떤 마음인지 알면서도 뻔한 말을 해주는 수밖에 없다.

 

이렇게 해내는 거 자체가 대단한 거야. 더 하다 보면 스스로 만족할 만큼 멋진 작품을 만들 수 있어.”

 

      아이는 입술을 삐죽 내밀며 고개를 흔들고 내 말을 흘려보낸다. 아이가 언제라도 어린 시절의 자신에게 백 점을 준다면 좋겠다.

 

 

 

*갱지: 재활용 종이. 빛깔은 회색, 얇아서 잘 찢어진다.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야기] 내가 좋아하는 색  (1) 2024.04.27
[이야기] 타임 코스모스  (0) 2024.04.22
[여행] 인간 내비게이션  (0) 2024.03.25
[이야기] 알뜰살뜰 돈의 여유  (1) 2024.03.13
[이야기] 끔찍이도 귀한 딸  (0) 2024.0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