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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이야기] 끔찍이도 귀한 딸

       우리 부모님은 나를 온실에 가두고, 여리여리하며 순종적인 꽃으로 키우고자 하셨다. 하지만 나의 기질과 양육 방식이 충돌하여 성장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 내 안에는 크고 깊은 어둠이 자라났다. 하지만 빛도 함께 있다. 오늘은 밝은 면만 이야기하려 한다. 사랑만 받고 자란 귀한 외동딸(아님)로 오해받는 것도 나쁘지 않으니까.

 

        우리 아빠는 노는 걸 싫어한다. 술도 멀리하며, 노래방도 안 가고, 영화도 안 보고, 여행도 안 좋아한다. 고집도 세서 아빠가 싫은 걸 권유하면 완강히 거부하기에, 엄마는 즐거움을 찾아야 할 때면 아빠 빼고 했다. 그런데 유난히 길었던 어느 명절 연휴에 너무 심심한 나머지 나는 부모님과 보드게임을 하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카탄의 개척자>3인부터 할 수 있어서 아빠가 꼭 필요했다. 엄마를 먼저 섭외해 두고 아빠를 불렀다. 역시 순순히 응하지 않았다. 나는 주둥이를 내밀고 필살기를 날렸다.

 

        낼모레 서른인데 9시 뉴스 전에 들어오라고 하고, 친구도 마음 편히 못 만나게 하면서 놀아주지도 않으면 어떡해!”

 

         아빠는 어쩔 수 없이 거실로 나와 주사위를 굴렸다. 엄마는 아빠가 굴복하는 모습을 보며 말했다.

 

        이 남자가 나랑 연애할 때도 안하던 짓을 하네.”

 

         셋이서 딱 한 판 같이 했으나, (27, 회사원)은 만족했다.

 

 

         평범한 딸 바보 아빠는 딸이 만든 음식을 마주했을 때, ‘세계 최고로 맛있다!’라거나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적어도 드라마에선 그랬다). 그러나 우리 아빠는 이렇게 말한다.

 

        먹을 만은 한데, ○○식당이 더 낫다. 다음엔 거기 가서 먹자꾸나.”

 

         물론 내 요리 실력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옆에서 맛있게 먹던 신랑은 우리 아빠 입맛이 매우 남다른가 보다며 놀라워했다. 하지만 엄마는 다르게 생각했는지 아빠에게 눈을 흘기며 말했다.

 

        마누라는 고생시켜도, 딸이 하는 건 싫은가 보네.”

 

         어쨌거나 부모님은 나를 많이 아낀다. 내가 임신 중 자궁 수축으로 입원했을 때, 엄마와 아빠가 번갈아 가며 병실에서 주무시고 간호해 주셨다. 병원에서는 아버님이 밤새 딸 곁을 지키는 경우는 처음이라며 우리를 드라마 보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아빠와 나는 별로 할 말이 없어 이틀 동안 각자 책 한 권을 완독했을 뿐이었다.

 

 

         신랑은 당연히 내가 귀한 딸인지 모르다가, 조금씩 경험하며 알아가고 있다. 얼마 전 제주도 여행을 끝낼 무렵, 신랑이 회사 때문에 먼저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갔다. 우리는 차를 배에 싣고 제주도에 갔던 터라, 올라올 때도 진도에서 서울까지 운전해야 했다. 하는 수 없이 우리 엄마와 아이를 비행기에 태워 먼저 서울로 보내고, 나 홀로 차를 끌고 가기로 했다. 부모님은 이 결정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엄마는 제주도에서 함께 지낸 사흘 내내 사위를 설득해 보았으나 실패했다. 서울에 있는 아빠도 사위에게 두 번이나 전화하여 우려와 유감을 표했다. 그러나 우리 신랑은 나를 보호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믿어주는 사람이었다.

 

        괜찮습니다. 따님 혼자서도 서울까지 무사히 올라올 겁니다.”

 

         신랑의 말대로 나는 오랜만에 차 안에서 노래를 실컷 틀어놓고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며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잘 왔다는 소식을 듣고 부모님은 가슴이 벅찬 듯했다.

 

        우리 딸은 정말 대단하다니까.”

 

        

         부모님의 딸 사랑은 이제 손주로 넘어가고 있다. 그래서 나는 조금씩 숨통이 트이지만, 내 아이가 버거워할 때마다 미안해지곤 한다. 다행히 나에겐 매운맛이었다면, 손주에게는 순한맛으로 변하긴 했다. 부모님도 조금씩 부드러워지고, 나도 가정이 있는 사람으로서 힘이 생겨 예전만큼 괴로운 일은 없다. 앞으로는 나를 이토록 끔찍이도 아끼는 마음이 우리 가족에게 웃음을 가져오리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