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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여행] 두다다다다다 알프스

     나는 겁이 많으면서, 동시에 모험심이 강하다. 그리고 산을 좋아한다. 이 성격과 취향이 합쳐져 가장 강렬한 추억을 남기고 온 여행이 있다.

 

       친구와 함께 스위스 여행길에 올라 절반은 체르마트(Zermatt)처럼 유명한 관광지에서 시간을 보냈다. 출근해야 하는 친구를 먼저 한국으로 보낸 뒤, 남은 시간은 산속에서 지내기로 했다. 스위스는 안전하고 깨끗하기도 하지만, 11산을 할 수 있어서 좋다. 등산 장비가 없어도 케이블카나 산악열차가 잘 되어있어서 힘들이지 않고 여유롭게 산에 오를 수 있다. 신발을 단화 두 켤레만 챙겨가서 처음에는 편하게 산을 즐겼다. 그러다 기분에 취해 진짜 등산까지 했더니, 단화 한 켤레가 망가지는 바람에 버리고 오기도 했다.

 

       내가 방문한 리더알프(Riederalp)는 알프스 산맥 남쪽에 위치한 해발 2,000m의 작은 마을이다. 기차에서 내려 케이블카로 갈아타고 드디어 마을에 도착했다. 동네 구경도 할 겸, 북쪽으로 향한 등반로를 올라가니 계곡이 나왔다. 알레치 대빙하(Grosser Aletschgletscher)가 끝나고 호수와 이어지는 곳인데 풍경이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로 멋있다. 한국에서는 본 적 없던 빛나는 색의 계곡물과 해발 3,000m가 넘는 장대한 알프스산맥의 남쪽 얼굴을 마주했다. 아름다운 풍경이 강렬하게 내 가슴을 울렸다. 이걸 보고 그냥 케이블카만 탈 수는 없었다.

 

리더알프에서 산 케이블카 티켓

 

     

     첫날에는 해발 2,230m Riederhorn(리더호른)에 가볍게 올랐다. 마을에서 200m 정도만 올라가면 되니, 꼭대기만 가파른 동네 뒷산 정도였다. 둘째 날에는 빙하 계곡물이 형형히 빛나는 광경을 보며 산 능선을 타고 봉우리 두 개를 찍었다. 능선을 타서 시간은 좀 더 걸렸지만, 눈도 없고 나무나 바위가 많지 않아 어려운 길은 아니었다. 단화로도 가뿐했다. 내려올 땐 케이블카를 타서 시간과 체력도 아낄 수 있었다.

 

      매일 등산 하며 자신감이 넘치자 나는 드디어 사고 칠 준비를 했다. 먼저 케이블카를 타고 해발 2,925m 에기스호른(Eggishorn)에 올라 빙하 계곡을 내려보며, 능선을 타고 해발 2,858m 벳머호른(Bettmerhorn)으로 걸어가서 봉우리를 찍고 내려와 케이블카를 타고 하산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이전 봉우리와 달리, 에기스호른(Eggishorn)은 얼음으로 덮여있었다. 등산로도 얼어서 위험했다. 다른 여행객은 등산지팡이, 등산화, 아이젠, 방한 등산복을 완비하고 있었다. 그에 반해 나는 여름 챙모자, 가벼운 바람막이, 청바지를 입고 단화를 신고 있었다. 나름대로 보온을 위해 스카프를 목과 얼굴에 꽁꽁 싸맸다. 나는 내 차림새에 굴하지 않고 빙하 계곡을 눈에 담으며 등산로를 걸었다. 나를 보는 사람마다 불안과 염려 가득한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그 관심이 부담스러워 인적이 드문 길을 선택하고 말았다.

 

      처음에는 정상을 가리키는 이정표를 따라 걷고 있었는데 중반쯤부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내 눈앞엔 어느새 흰 눈밭과 정상을 향해 뻗은 비스듬한 절벽이 있을 뿐이었다. 절벽은 가파르지 않았고, 남쪽을 향해있어 다른 곳과 달리 얼음도 없었다. 저 절벽 꼭대기까지만 올라가면 어찌 됐든 등산로와 만난다고 생각했다. 산꼭대기는 넓지 않으니까. 그래서 나는 절벽으로 향했다.

 

      평온한 눈밭으로 보이던 곳은 걷다 보니 커다란 돌덩이가 듬성듬성 놓인 바위 지대였다. 바위 크기가 바닷가 테트라 포트만큼 커서, 눈이 녹은 곳은 자칫하면 바위틈으로 몸이 낄 수 있었다. 그 사실을 이미 한 가운데까지 가서야 알아챘다. 어쩔 수 없이 내 목숨을 운에 맡기고 무작정 앞으로 나갔다. 멀리 산 중턱에서 나를 발견한 등산객과 눈이 마주쳤다. 혹시나 도와주지 않을까, 손을 흔들었다. 그 여자는 내가 단순히 인사하는 걸로 생각했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가던 길을 가버렸다.

 

      절벽은 위험해 보이지 않았다. 놀이터에서 줄을 잡고 올라가는 나무 비탈과 비슷한 경사였다. 중간중간 바위도 있어서 발 딛기가 편했다. 한 가지 불편한 점은 절벽을 뒤덮은 이름 모를 식물에 가시가 돋아있어, 손을 짚고 올라가면서 온통 가시가 박혔다. 그래도 갈 만했다. 이제 산 정상에 거의 다 올랐고 마지막 문제와 마주했다. 큰 바위가 나를 향해 기울어져 있어 맨손으로 올라갈 수가 없었다. 바위 너머에는 등산로가 있는지, 사람 소리도 제법 들렸다. 절벽 저편에서 밧줄 같은 걸 내려주면 충분히 넘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열심히 ‘Hallo!’ 외쳐 봤지만, 나를 발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제 체력도 떨어져 가고, 안개가 껴서 앞이 안 보이는 순간도 있었다. 날씨가 흐려지니, 어두워지면 큰일이라는 생각에 뒤늦게 겁을 먹었다. 고민하다가, 결국 내가 묵는 호텔에 이메일을 보냈다.

 

     제가 길을 잃었어요. 위치는 여기(구글맵 현재위치 첨부) 쯤이에요. 도와줄 수 있나요?”

 

      나는 우리나라 산악구조대를 생각하고, 사람이 저 바위 건너편으로 와서 손을 내밀어줄 거라 기대했다. 얼마지 않아 전화가 왔다. 대략 내 위치를 말했더니 내 핸드폰으로 온 문자를 눌러서 정확한 위치 정보를 보내달라고 했다. 금방 도착한다는 말을 듣고, 역시 구조대는 빠르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소리가 먼저 들렸다.

 

     두다다다다다다…….”

     저 헬기, 날 구조하러 온 건가?’

 

      나는 반갑기보다 당황했다. 분명히 길을 잃었다고 했는데, 헬기가 뜨다니! 다리가 다친 것도 아니고 너무나 멀쩡한 내가 헬기가 필요하진 않았다. 날 찾는 게 아니길 바랐지만, 헬기는 계속 나를 찾아 주변을 맴돌았다. 결국 나는 스카프를 휘둘러 정확한 위치를 알렸다.

 

      ‘내가 저 스위스 구조대 헬기를 타는구나. 저걸 탈 줄 알았으면 그냥 이 악물고 저 바위를 기어갈걸!’

 

      현실적인 고민을 하며 새빨갛고 늠름한 헬기를 바라보았다. 산에는 안개가 자욱했다가, 바람이 불면 다시 맑아지길 반복해서 헬기도 안개를 피해 도망갔다가 다가오길 반복했다. 마침내 좋은 기회를 잡았는지 헬기는 산 정상 위에서 안정적으로 떠 있었다. 헬기 문이 열리고 줄이 내려오면서 빨간 옷을 입은 구조대원 한 사람이 나를 향해 내려왔다. 그리고 다시 안개가 다가오자, 헬기는 잠시 멀어졌다. 그동안 구조대원은 나에게도 하네스를 채우고 자신과 연결된 줄에 고리를 채웠다. 안개가 사라지며 다시 헬기가 다가왔고, 구명줄에 우리 하네스를 연결하니 공중에 떴다. 나는 줄에 내 몸을 의지한 채, 두 발로 서고 싶었던 벳머호른(Bettmerhorn) 정상 위를 날아올랐다. 발아래로 내가 오르고자 했던 산이 보였고, 어렴풋이 등산객의 호기심 많은 눈이 보였던 것 같다. 눈 마주치기 싫어서 그냥 무섭다며 구조대원에게 머리를 박고 멀리 보이는 알프스산맥과 나란히 날아올랐다.

 

      헬리콥터에 대롱대롱 매달려있던 나는 마침내 무사히 헬기 안으로 들어갔다. 조종사와 다른 구조대원 한 명이 친절하게 반겨주었다. 여러 가지로 당황했으나 뭐라 할 수 없어, 그냥 무서웠다고 둘러대고 얌전히 앉아있었다. 헬기는 멀리 가지 않고 가깝고 인적이 드문 평지에 착륙했다. 우선 헬기에서 내린 뒤에, 구조대원이 서류를 들고 내 앞에 앉았다. 나는 순순히 여권을 내어주었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이용 금액 결제의 시간이었다. 힘없이 지갑을 열어 카드 하나를 내밀었다. 이용한도 초과였다. 지갑 안에서 모든 카드를 꺼내주었다.

 

     아마도 이 중 하나는 될 거예요.”

     걱정 마세요. 안 되면 분할 결제 해드릴게요.”

 

      익숙한 일인지 구조대원은 친절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다행인지 잘 안 쓰는 카드 중 하나가 실력을 발휘했다. 구조대원은 안심하며 나를 원하는 곳에 내려주겠다고 했지만, 나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부담스럽다고 사양했다. 그런데 어차피 출동한 비용을 냈으니 태워줄 수 있다고 해서, 공짜라는 말에 마지못한 척 숙소 앞까지 가달라고 했다. 하지만 곧이어 크게 후회하고 말았다. 이 동네는 작은 마을이다. 온 동네 사람과 관광객이 헬기 소리를 듣고 밖으로 나왔다.

 

     두두두두두두……, 다다다다……, 타다다다다…….”

 

      프로펠러 바람에 미친 듯이 출렁이던 들판이 서서히 잠잠해지고, 구조대원의 도움을 받으며 내렸다. 구조대는 친절한 얼굴로 손을 흔들며 나만 두고 사라졌다. 동네 하나를 떠들썩하게 만들고만 나 자신에게, 얼떨떨한 마음과 부끄러움이 물려와 정신이 혼미해졌다. 멍하니 서서 호텔이 어디 있나 살폈다. 호텔 사장님은 나를 발견하고는 한달음에 달려와 꼭 안아주셨다. 무사히 와서 다행이라고 토닥여주고 손을 잡아주셨다. 레스토랑에서 따뜻한 식사를 하고 쉬라고도 해주셨다. 지금 생각하니 참 고마운 분이다. 하지만 그 당시 나는 이 말 한마디만 남기고 다음날 떠날 때까지 호텔 방 안에서 한 발짝도 나오지 않았다.

 

      “Mir ist peinlich(쪽팔려요).”

 

      다음 날, 나를 구조대에 신고해 주었던 여자 사장님은 보이지 않았다. 일부러 찾기에는 민망해서, 무뚝뚝한 남자 사장님에게만 열쇠와 작별 인사를 남겼다. 사장님은 다행히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마을을 내려가는 케이블카를 타러 탑승장으로 나가자, 어제 등산길에 만났던 여행객과 마을 주민들이 나를 두고 수군거렸다.

 

     그래, 내가 바로 어제 그 헬기를 탄 아시아 여자애다!’

 

      속으로 구시렁거려 보았지만 민망함을 감출 수 없어 창밖에 펼쳐진 알프스 산맥만 눈에 담으며 기차역으로 내려왔다. 이 이야기는 지인과 가족에게도 말 못 하고 지금의 남편과 시댁 식구만 알고 있다. 남편은 자기 가족에게 비밀이 없기 때문이다. 스스로 이 일을 말하기엔 아직도 부끄럽다. 이 부끄러움은 마치 어린아이에게 네가 아가 때 이랬는데 정말 귀여웠다.’고 말하면, 아이가 하지 말라며 도망가는 마음 같다.

 

      헬기를 타고부터 리더알프를 벗어나기 전까지 나는 사진이나 영상을 하나도 찍지 않았다. 너무나 멀쩡히 구조됐기 때문이다. 행여나 영상을 올리려고 철없이 구조대를 부른 사람이 될까 봐, 오해받지 않기 위해 카메라는 꺼내지 않았다.

 

      한국에 돌아와 혹시나 인터넷 신문에 내 이야기가 실리지 않았는지 검색해보았다. 내가 걱정했던 이야기는 없었지만, 그보다 2년 전 겨울에 리더알프(Riederalp) 근방에서 길을 잃고 사망한 사고에 대한 기사가 있었다. 이토록 위험한 산이라, 그저 길 잃은 나를 위해 헬기가 출동했나 보다. 역시 등산은 혼자 하지 말고, 안전한 등산로를 이용해야 한다.

 

      안전 수칙을 잘 지켜야 돈을 아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