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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소설] 가을

 

       남자는 항상 고독했다. 이맘때면 특히 더 외로움에 빠지곤 했다. 가로수에 무성했던 싱싱한 이파리가 붉게 물들어 가면 초조해졌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새파란 하늘이 불어주는 바람 한 점에 우수수 떨어지는 모습을 볼 때면 마음이 더없이 허전해지고 말았다. 옆에 사람이 있으나 없으나 그는 언제나 마음이 시렸다. 연인을 품에 안을 때면 잠깐 뜨거운 열기를 느끼기도 했지만, 그 열기는 펄떡거리는 심장이 잠잠해지면 땀과 같이 허무하게 식어버리곤 했다. 고독은 그가 태어날 때부터 함께했고, 생을 살아가는 동안 그와 한 몸이 되었다. 그는 이 느낌이 익숙하고, 이제는 놓아줄 수 없을 만큼 간절하게 원하기도 했다.

 

        아직 빨래통에 있는 반소매 윗도리가 무색해질 만큼 급격히 추워진 바깥 공기에 뺨이 제법 차가워진다. 늦은 저녁 한잔하고 돌아오는 퇴근길 집에 다다를 때면 해가 사라진 지 오래라 바람은 더 차가우면서 메말랐다. 바람에 고스란히 드러난 그의 턱은 건조함에 하얗게 일어나기 시작한다. 낮에는 구름이 없어 푸르고 높았던 하늘이 밤에는 더 깊은 공허함을 품는다. 눈을 들어 밤하늘을 올려본다. 넓은 우주 한 가운데서 동료를 잃고 홀로 부유하는 외계인이 된 기분이다. 이럴 때마다 그는 외투 안쪽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찾는다. 한 개비 집어 들어 불을 붙여 차갑고 어두운 길에 그의 존재를 드러낼 담뱃불 한 점을 남겨본다. 고독은 그를 이 쓸쓸한 풍경에 잘 어우러지게 만들어 주었고, 그는 그 안에 스며든 자기 모습을 사랑했다.

 

        “결혼 하자.”

 

        연인이 그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보며 말을 던졌다. ‘올 것이 왔구나.’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재빨리 입꼬리를 올려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 그렇지만 도저히 눈을 마주치지는 못해서 내리깔다가 연인의 손이 눈에 들어오자 다시 얼굴을 들었다. 다행히 남의 기분에 특별한 관심이 없는 연인은 자신의 감정을 눈치채지 못한 듯 보였다.

 

        “어차피 결혼을 전제로 만났으니, 이제는 부모님께 인사드리고 진행하자.”

 

        남자가 할 수 있는 건 입꼬리를 계속 올린 채로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일뿐이었다. 연인은 만족한 듯 웃으며 핸드폰을 들고 사라졌다. 남자에겐 연인의 통화 소리만 들려왔다. 아마도 가족과 결혼 진행에 관해 이야기하는 모양이었다. 고독과 평생 함께하길 원하는 남자와 결혼은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에겐 독신주의자로서의 삶을 살아갈 고집이 없었다. 평생 살아가면서 만나는 이들에게 왜 결혼하지 않았냐고 추궁당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가 좋다고 곁에 있는 연인은 주로 혼자 있는 그를 내버려 둘 줄 알았다. 이 삶을 지속할 수 있다면 그냥 연인이 하자는 대로 따르는 게 그의 인생이 덜 고달파질 것 같았다.

 

        “왜 이리 성급하게 하니.”

 

        남의 결혼 이야기 하듯 연인과 결혼하기로 했다고 전하자, 어머니는 그에게 처음으로 서운함을 비쳤다. 그의 고독은 어디에서 온 걸까 생각해 보면 아버지보다는 어머니였다. 가족 여행을 가서도 지쳤다 싶을 때면 어머니는 커다란 나무 아래에서 혼자 바람을 맞으며 말없이 가만히 앉아있었다. 혼자 있을 때보다 아버지와 함께 있을 때 더 쓸쓸한 얼굴을 보이기도 했다. 가족 행사가 있을 때가 아니면 서로 간섭하지 않는 결혼생활이었다. 남자는 어머니의 삶에 자식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자식의 결혼이 얼마나 중요한지 가늠해보지 않았다. 하지만 며느리, 손주와 함께 복작복작하게 살아갈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그가 결혼하여 어머니가 자유롭게 사는 모습은 그려봤다. 지금처럼 남자의 결혼에 어머니가 반대 목소리를 내고자 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단풍이 물들 무렵 상견례를 하고 가을이 다 가기 전에 식을 올리자는 말이 나왔다. 연인이 하자는 대로 아무 의견 없이 대충 끝내버리려는 남자를, 어머니는 이해하지 못하는 기색이 완연했다. 결혼식을 일 년 뒤에 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는데 어머니에게는 무엇이 다른 걸까. 기숙사에 있을 때나 유학할 때는 일 년에 한 번 얼굴을 볼까 말까 하는 가족이었다. 그의 결혼이 가족의 형태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그런 결혼이 마음에 들었다. 아마도 결혼한다면 명절에나 형식적으로 얼굴을 볼 터였다.

 

        불편한 상견례를 마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자기 가족을 챙기며 돌아가는 연인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남자도 부모님과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모양이었다. 상견례 자리보다도 부모님과 함께 돌아가는 차 안이 더 답답하다고 느끼며 남자는 창문을 열었다. 시원한 바람이 한꺼번에 밀려들며 그의 머리카락을 흩트리고 길게 내린 앞머리가 눈을 찌를 듯 날려 그대로 눈을 감았다. ‘이제야 나도 축의금을 받아보는구나!‘하며 누구는 꼭 와야 할 것이고, 누구는 못 와도 성의를 보여야 할 것이라고 들떠서 끊임없이 말하고 있는 아버지와 달리 어머니는 아무 말이 없었다. 집으로 돌아가 혼자 방에 틀어박혀 이대로 하루가 저물기를 기다릴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어머니는 안주 없는 술상 앞에 그를 불러 앉혔다.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겠니?“

 

        미소도 없지만 인상도 쓰지 않는, 건조한 얼굴로 그를 지긋이 바라보며 어머니는 질문했다. 상견례 자리에서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상대편에게 속수무책 없이 당하고 도저히 납득이 안 되는 결혼이라 판단한 모양이다. 준비가 안 되었으니 결혼은 천천히 하면 좋겠다는 말은 겉모양만 예쁜 전과 함께 젓가락에 잡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예식 시간이라도 남자의 외할머니와 이모들이 편하게 올 수 있도록 옮겨달라는 부탁은 화려한 후식에 묻혀 삼켜졌다. 그 자리에서 남자는 점점 굳어져 가는 어머니의 얼굴을 보았다. 반면에 아버지는 이 식당이 유명한 이유가 있다며 음식을 한 가득 집어 반주와 함께 입에 넣고 만족하고 있었다. 남자는 두 사람을 번갈아 응시하면서 최대한 입꼬리를 올리며 밥알을 하나하나 씹어 삼키는 일만 반복하다 왔다. 집에 돌아와 술잔을 사이에 두고 바라본 어머니의 두 눈은 어딘가 슬펐다. 그 앞에서 남자의 입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차라리 빤히 보이는 거짓말을 하는 편이 나았을까. 자기 연인을 너무나 사랑해서 그녀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들어주고 싶다고, 사랑에 미쳐서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남자의 마음을 이해해달라고 말한다면 어머니는 술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을까. 그러나 남자의 마음 한구석에는 어머니를 안심시켜 드리고 싶은 작은 어리광이 남아있었는지, 혹은 이왕 이렇게 된 거 마지막 남은 한 알의 정조차 떼어버리자는 마음이었는지 모르게 아무 말이나 뱉어버렸다.

 

        “그쪽 집이 부자예요.”

 

        말이 떨어지고 나서야, 이 말은 어머니에게는 해서는 안 될 말이었다는 걸 남자는 깨달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화로 얼룩져 가는 어머니의 얼굴을 보았다. 두 눈에는 경멸과 증오가 차올랐다. 이전의 그에게 애정을 주고 있었다는 걸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확연한 차이가 있는 눈빛이었다. 남자는 억울했다. 연인의 돈을 보고 하는 결혼이 아니고, 그저 편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마다하지 않을 뿐이었다. 그의 삶에는 큰 굴곡이 없었지만, 천진난만한 아이로 살지 못했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봐 온, 언제나 성실하게 아침 일찍 일터로 나가는 어머니의 뒷모습이 외로웠기 때문이다. 자신이 누리는 평화로운 일상이 누군가의 희생에서 나왔다는 걸 어렴풋이 느끼면서 그는 항상 불편했다. 그래서 돌아가신 지 오래라 얼굴 모르는 조상의 피와 땀으로 일구어져 대대손손 내려오는 부로 인해 연인과의 생활이 안락하게 유지될 수 있다면 편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머니가 이를 부정적으로 생각한다는 자체를 이해할 수 없었다. 결국 그는 부모님 댁에 남아있는 모든 옷가지와 컴퓨터, 어머니의 사랑과 가족의 정을 버려두고 도망쳐 나왔다. 새카만 도로 위를 달리는 버스 안에서 그는 다시 그 집으로 돌아갈 수 없을 거라 느꼈다.

 

        연인은 자신의 예식을 일사천리로 준비했다. 남자는 자신의 일부였던 어머니를 바람에 떨어져 가는 이파리와 함께 멀리 날려 보냈다. 어느새 나무 아래 수북이 쌓여 지나가는 발걸음에 바스락거리는 낙엽 더미에는 붉은빛이 곱게 물든 이파리도 있고, 귀퉁이가 거뭇하게 썩어 들어간 얼룩진 이파리도 있었다. 마냥 푸른 줄 알았던 잣나무마저도 누렇게 뜬 솔잎을 땅으로 잔뜩 떨구어 놓았다. 아마도 그의 인생에서 이 손으로 가질 수 있는 건 분명한 한계가 있는가 보다. 새로이 가정이라는 걸 꾸리자면 손에 쥐고 있던 걸 버려야 했다. 그가 버리기로 한 건 어머니고, 그래서 행복해졌는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그는 불행을 얻고 싶었을지 모른다. 이 순간 그가 가장 원하는 건 고독이었다. 고독을 위해서는 행복보다는 불행을 곁에 두는 게 옳은 결정이리라.

 

        한껏 추워진 바람에, 이제는 가을의 기색도 사라져간다. 무성하던 나무는 단풍조차 남아있지 않고 앙상하게 말라간다. 다만 높고 푸르렀던 하늘은 더욱 형형한 빛을 내며 그 아래 서 있는 남자를 더 초라하고 외롭게 만들어 주어 그에게 고독을 허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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