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계장: 임시 계약직 노인장
내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단어였다. 우리 외할머니가 얼마 전까지 임계장이었던 거네. 요즘은 노인장들도 일해야 살아갈 수 있기에 많은 분이 일자리를 찾는데 정규직은 1%도 못 구할 것이다. 모두 임시 계약직이겠지.
외할머니가 일을 나가 고용주와 함께 식사할 때에는 항상 눈치를 보며 양껏 드시지 못했다. 자식들은 그런 엄마가 어리석어 보였는지 왜 눈치를 보느냐며 타박했다. 나도 외할머니가 일을 그렇게 잘하시면서 당당하게 밥 먹지 못하는 이유가 뭔지 알 수 없었는데, 임계장은 매 순간 고용주의 눈치를 봐야 한다는 것을 몰라서 그랬던 거다.
임계장에게는 욕설보다 ‘내일부터 나오지 마세요’라는 말 한마디가 무섭다는 것이 가슴이 아프다. 관리자의 말 한마디에 15년 다닌 직장도 속수무책 없이 관둬야 하다니. 책을 읽으면서 부당한 대우를 받고도 아무 말 못 하고 일해야 하는 현실이 참 슬펐다. 세상이 왜 이렇게 된 걸까? 어째서 한 사람의 일자리를 빼앗으며 다른 한 사람은 착취하고서는, 돈을 아꼈다고 좋아하는 사회가 된 걸까?
“수저 하나 더 놓으면 되는 건데 뭐 어떠니? 밥 먹고 가.”
내가 엄마 집에서 밥 먹고 갈지 말지 고민할 때 엄마가 자주 하는 말이다. 가족이 아니더라도 이 이야기를 종종 들으며 살아왔다. 친구네 집에서 놀다가 늦어지면, 친구 엄마는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며 자리에 앉도록 권하셨다. 많은 사람이 이 말에 익숙하지 않을까?
우리는 설령 내가 조금 덜먹게 되더라도 한 숟갈씩 덜어 다른 한 사람 몫을 만들어줄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던가? 그런데 십시일반(十匙一飯)은 못할망정 한 사람(고용주)이 밥을 더 먹겠다고 몇 사람을 내쫓고 있다. 아파트 관리비를 아껴보겠다고 경비원을 줄인다. 최저임금이 올랐다고 더 줄인다.
만약 아파트에서 인건비를 아끼고 싶다면 경비원을 줄이더라도 경비 외의 일을 맡겨서는 안 되고 주민이 환경미화도 직접 하고 음식물 쓰레기통도 직접 닦아야지. 예전에 내가 살던 아파트에서는 분리수거를 주민이 돌아가며 담당했었는데, 어느새 경비원들이 하는 것이 당연해졌고 나도 그게 문제라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던 것이 부끄럽다.
그래도 희망적인 소식도 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떠들썩했던 때, 부모님께서 사는 아파트에 새로 부임한 주민대표가 투표를 진행했다. 관리비를 절감하기 위해 경비원 감축안을 내세웠고 주민 과반수의 동의가 필요했다. 다행히 우리 부모님을 포함한 많은 주민이 반대했고, 경비원들이 감사를 표하며 한참 동안 주민을 만날 때마다 감사하다고 고개 숙여 인사했다고 한다.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인데, 주민들이 착해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 아니어야 할 텐데……. 아파트 주민들의 선택이 특별한 일처럼 느껴져서 안타깝다. 이 사회에서 주민대표의 의견이 언젠가 합리적인 선택이 될까 봐 걱정스럽다. 내가 얼마 전 이사 온 아파트는 열한 동이 있는데 경비초소가 세 곳 밖에 없다. 이제는 아파트를 지을 때 처음부터 경비원을 적게 고용할 생각에 경비초소도 적게 만드는 것이다.
한때는 동 마다 경비원이 있었던 적도 있었다. 갓 초등학교에 입학한 나는 엄마가 일하러 나가시고 혼자가 되어 심심하면 경비 할아버지를 찾았다. 혼자서 밥 먹기 싫을 땐 경비초소에 밥이랑 반찬을 가지고 내려가서 할아버지 의자에 앉아서 먹기도 했다.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달려갈 수 있는 사람이 있었던 그때가 아이들이 자라기 더 좋은 세상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원탁을 참 좋아한다. 식구가 몇 없는 우리 집에는 사실 네모난 식탁이 공간을 아낄 수 있어 더 알맞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내가 우겨서 원탁을 샀다. 왜 동그란 탁자를 좋아하냐면 한 사람이 더 늘어날 때마다 의자를 하나 더 넣고 수저를 한 벌 더 놓는 것이 불편하지 않기 때문이다. 손님이 와도 크게 자리를 옮기지 않아도 되고, 상에 모서리가 없어서 모두가 편하게 식사할 수 있다. (모서리에 앉아서 밥을 먹어본 사람은 그 설움을 알 것이다!)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도 좋은데, 그냥 이렇게 둥글게 둘러앉아 밥 먹는 것도 좋지?”
내가 이렇게 물으면 나를 지지하는 답변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여전히 사각 식탁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다. 임시 계약직의 대우가 정규직과 같아야 한다고 나는 생각하지만,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겠지? 아주 파격적으로는 아니더라도, 조금씩은 더 나은 방향으로 바뀌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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